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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joy your Life] 한계를 넘어서 도전하는 사람들

호호, 신나는 생활

by 금호타이어 2012. 5. 1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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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을 향한 도전

인간의 역사는 자연에 도전하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세상의 끝처럼 느껴졌을 높은 산봉우리에 오르고, 끝이 없을 것 같아 보였을 사막을 건넜으며, 다시 돌아올 수 없을 지도 모를 망망대해를 항해했다. 그래도 인간의 도전 정신은 그치지 않아 창공으로 날아올랐고 아예 지구를 벗어나기도 했다. 어쩌면 이러한 도전이 인간의 본능이자 즐거움일지도 모르겠다. 인생을 즐기는 네 가지 방법, 첫 번째는 ‘도전’이다. 

                                                                                                                       글 박정선


 ▶  Adventure ◀





암벽 등반


깎아지를 듯한 절벽을 자일과 로프 하나에 의지하여 기를 쓰고 올라가는 등반가들. 사실 옛날에는 등반가들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산 정상은 반드시 정복해야 할 중요한 자리였다. 봉화를 설치하는 군사적인 전략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높은 봉우리는 암석으로 이루어진 곳이 많아 제대로 된 장비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금단의 구역이기도 했다.


암벽 등반의 역사는 알프스에서 시작된다. 알프스 산맥에 가로막힌 이웃나라를 치려고 할 때, 위험하지만 산을 넘어가면 기습이 가능했기에 이탈리아,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이 산을 정복하고 싶어 했다. 1760년 암벽을 올라가기 위한 장비들이 개발되면서 알프스의 최고봉인 몽블랑에 대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이후 1865년 영국의 등반가가 그때까지 등반이 불가능한 암봉이라고 불리던 최난봉 마터호른 산을 정복하면서 암벽등반기술이 급속히 발달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전쟁이 가져다 준 신소재를 바탕으로 나일론 자일, 매입볼트, 등자 등 장비의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암벽등반은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잡게 되었다.

장비의 발전에 힘입어 지구상에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산은 사라졌고 오늘날 암벽 등반은 봉우리와 루트마다 등급을 나누어 난이도를 정해놓고 있으며 암벽등반은 난이도와 스피드를 경쟁하는 스포츠가 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꾸준히 스타 등반가를 배출해낸 암벽등반 강국이며 최근에는 암벽등반의 여제 김자인 선수가 각종 세계대회를 석권하며 눈부시게 활약하고 있다.




에베레스트 등정


지구 상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어디인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에베레스트다. 히말라야 산맥에는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를 위시하여 해발 8,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무려 14개나 있다. 먼 옛날 인도의 대륙판과 아시아 대륙판이 충돌하면서 높이 솟아오른 히말라야 산맥은 지구 둘레의 6분의 1에 달할 정도로 길게 이어져 있으며 무시무시한 높이 때문에 새들 중에서도 오로지 인도 기러기만 이 산맥을 넘을 수 있다고 한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인간이 도전을 내밀지 않을 수 없다. 제1차 원정대를 보낸 것은 영국이었다. 1921년 첫 도전을 시작으로 그 후 1938년까지 일곱 차례 시도하였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에베레스트 등정엔 만년설에 감추어진 크레바스라는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고, 높이 올라갈수록 부족한 산소 때문에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장비들이 크게 개선되어 등반기술과 산행정보에 큰 진전이 있었다. 그 뒤로도 수 차례에 걸친 도전 끝에 결국 1953년 5월 29일 영국 원정대의 에드먼드 힐러리(뉴질랜드인)와 셀파 텐징 노르게이가 드디어 첫 등반에 성공했다. 힐러리는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출신으로, 에베레스트에 등정한 뒤 영국의 엘리자베스2세로부터 나이트작위를 받았다. 이후 1960년 중국팀이 두 번째 등정에 성공했고, 1963년에는 미국팀이 서릉에 새 길을 뚫으며 올랐다. 우리나라는 1977년 고상돈 대원이 정상을 밟아 여덟 번째 등정국이 됐다.


눈 덮인 설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아이젠과 등산화에 눈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스패츠가 필수다.


에베레스트 등정엔 만년설에 감추어진 크레바스라는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고, 높이 올라갈수록 부족한 산소 때문에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  Challenge ◀


정글 카약


굳이 아프리카까지 가지 않아도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를 여행할 때, 최근 관광객들이 즐기는 레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글 카약이다. 희귀종인 망그로브 나무들이 펼쳐 놓은 신비한 풍경을 감상하려면 카약을 타고 물길을 따라 정글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가장 안전하고 또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가 위험한 정글 속에서도 안심하고 카약을 타며 수려한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것도 그 동안 자연에 맞서 싸워 온 인간의 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19세기에 시작된 산업혁명이 일구어 놓은 풍부한 물자를 바탕으로 영국은 식민지 개척에 나선다. 네덜란드, 포르투갈, 프랑스도 영국의 뒤를 이어 부랴부랴 식민지 개척에 나서면서 땅따먹기를 하듯 전 세계를 누비게 되었다. 강력한 화력과 잘 훈련 받은 병사들로 무장한 식민지 개척자들에게는 고민거리가 있었다. 바로 말라리아였다. 아프리카와 인도 등지의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작은 모기가 옮기는 전염병은 식민지 개척과 대제국 건설에 최대의 장애물이었다. 특히 심각한 곳은 인도였다. 매년 200만 명의 인도인들이 말라리아로 죽어 갔다. 식민지에 주둔하던 병사와 이주자만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영국은 역시 식민지였던 자메이카에서 말라리아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냈다. 그 해결책은 키나 나무였다. 키나 나무의 껍질에서 추출한 퀴닌은 말라리아 치료제의 재료였다. 퀴닌 수요는 감당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만 매년 750톤이 필요했다.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 때부터 유럽 각국은 퀴닌의 대체물을 찾아줄 화학 약품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그 결과 황산퀴닌, 염산퀴닌, 에틸탄산퀴닌 등을 합성하였으며 곧 말라리아에 대한 예방주사도 개발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질병에 시달릴 걱정 없이 지구 어디든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 How to Challenge


지금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지구촌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상당히 최근의 일이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도전의 역사는 날씨와 계절에 대한 도전, 갈 수 없었던 곳에 대한 도전, 마지막으로 질병의 위험에 노출된 곳에 대한 도전 등의 단계를 밟아 왔다.

기후 극복 → 지형 극복 → 질병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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