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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 Column] 오프로드를 위한 SUV,온로드 위로 올라서다.

작은 SUV의 시대
오프로드를 위한 SUV,온로드 위로 올라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4WD 구동계가 달린 군용 자동차는 민수용으로 부활했다.
‘찝차’로 더 잘 알려진 윌리스 MB는 SUV의 원조로 역사에 남았으며 랜드로버 역시 원래는 농장에서 쓰기 위해 윌리스 MB를 개조해 만든 차였다. 이 두 자동차가 쌍두마차가 되어 SUV 시장을 끌어 온 지 75년이 지난 지금, 세계 SUV 시장은 놀랄만큼 성장하여 수많은 카 메이커들의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김형준/월간 <모터트렌드 코리아> 기자

 

현대적인 개념의 SUV가 등장한 건 1980년대 중반으로 짚 체로키가 주인공이었다. 왜건 보디에 4WD의 전천후 능력을 버무린 자동차는 이전에도 많았지만 일반적인 왜건을 대신하기에 손색없는 운전편의와 승차감을 지닌 4WD 왜건은 체로키가 처음이었다. 여기에 강력한 험로주파 능력 덕분에 농장이나 오지 등에 국한돼 쓰이던 4WD 왜건은 체로키 등장 이후 일상생활로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SUV는 북미시장에서 특히 인기가 높았다.

1980년대 미국시장은 값싸고 연비 좋은 일본 소형차가 잠식했다. 작은 차 만드는 재주가 없었던 미국 자동차회사들은 SUV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크고 힘이 좋은 SUV는 미국 소비자들 성향과 잘 맞았다. 미국은 휘발유 값도 싸서 연비 나쁜 SUV가 떵떵거리며 달리기 좋은 환경이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미국시장은 SUV의 전성시대라 해도 좋았다.

하지만 미국 SUV도 결국 철퇴를 맞았다. 국제유가가 오르고 경기침체가 지속되자 값이 비싸고 연비 나쁜 SUV의 인기도 급속도로 떨어졌다. SUV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지만 시장은 SUV 특유의 실용성을 포기하지 못했다. 작은 SUV의 등장은 경제성과 실용성과 안전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시대의 목소리였다.

조짐은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있었다. 미국과 달리 실용적인 가치를 우선순위로 삼는 일본과 유럽시장에서 트럭 대신 승용차를 베이스로 하는 컴팩트 SUV가 탄생한 건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일본에서 1995년 토요타 RAV4와 혼다 CR-V를 발표하자 유럽에선 1997년 랜드로버가 프리랜더로 화답했다. 프리랜더가 오프로드 성능을 포기하지 않은 소형 SUV였다면 RAV4와 CR-V는 쾌적한 도심주행을 위해 4WD 구동계까지 포기한 진정한 도심형 SUV였다.

 

 

전통적인 SUV가 쇠락하면서 2000년대 미국 SUV 시장은 승용차를 베이스로 한 컴팩트 모델과 럭셔리 제품의 구도로 양분됐다. 미국에서 인기 있는 럭셔리 SUV는 거의 독일에서 건너왔지만 정작 독일 사람들은 SUV에 별 관심이 없었다. X5나 레인지로버 같은 화려한 SUV는 그나마 형편이 나았다. 하지만 일찍이 연비 좋은 디젤 해치백과 적재능력이 뛰어난 중형 왜건이 시장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유럽에 소형 SUV가 발붙일 곳은 마땅치 않았다.

분위기는 2000년대 중반부터 달라졌다. 전 세계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자동차회사들은 틈새 시장에서 새로운 수익을 찾으려 애썼다. 세단과 쿠페, 쿠페와 왜건, 해치백과 SUV 등을 뒤섞은 크로스오버가 유행처럼 번진 이유다. 각국은 배기가스와 연비 규제도 점점 강화해 갔고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도 점차 다양해졌다. 그래서 미국은 공간이 넉넉하지만 기름을 적게 먹고 승차감이 좋은 자동차를 찾았고, 유럽은 기동력과 운전재미에 다목적으로 쓸 수 있는 개성 강한 자동차를 원했다. BRICs의 등장과 신자유주의가 중첩되면서 럭셔리 시장과 저가 시장이 함께 확대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태생부터 왜건과 4WD의 크로스오버인 SUV는 이처럼 복잡하고 복합적인 상황에 대응하기에 그만인 자동차였다. 세단이나 해치백, 왜건 등과 달리 SUV는 차의 형태나 구동방식 등에 제약이 적어 시장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장르와 성격으로 변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연료효율과 친환경성능에 대한 고민, 더 나아가 기업평균연비 규제까지 더해지면서 소형 SUV 시장은 지금 가장 뜨거운 카테고리가 됐다.

SUV는 유럽에서 인기가 없다는 말도 이젠 통하지 않는다. 패밀리 해치백 골프를 토대로 만든 폭스바겐 티구안은
2007년 출시 이후 지금까지 7만 대 이상 팔렸고, 그 중 가장 큰 시장은 유럽이다. 소형 SUV는 장르도 가리지 않는다. 어떤 모델을 토대로 개발했는가에 따라서 혹은 어떤 스타일로 꾸몄는지에 따라서 백차백색百車百色의 개성을 뽐낸다. 인피니티 EX가 G37 왜건 같은 운전감각을 주는 크로스오버라면 볼보 XC60은 날렵한 쿠페 스타일이 일품인 럭셔리 크로스오버다.

푸조 308을 베이스로 하는 3008의 경우 해치백과 MPV가 더해진듯한 스타일에 정통 스포츠카 구조의 운전석과 재래식 SUV에 가까운 승객석 설계가 뒤죽박죽이 된 진정한(?) 의미의 크로스오버 스타일을 뽐낸다. 작은 체격에 1.6ℓ 소배기량 디젤 엔진과 반자동 변속기, 앞바퀴굴림 구동계를 담아 리터당 20km 이상의 고연비를 실현한 점도 놀랍다.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모델 중엔 닛산 주크가 있다. 이 차는 해치백인 골프(4.19m)보다 짧지만 지붕은 높고 너비는 큰 다부진 체격을 지녔다. 실루엣은 해치백 같지만 쿠페처럼 부풀어 오른 휠아치와 SUV만큼 두툼한 보닛으로 정체불명의 개성을 드러낸다. 주행감각은 더 이색적이다. 미니 사이즈의 차체에 좌우 뒷바퀴를 개별적으로 구동하는 토크 벡터링 방식의 4WD 시스템을 더 해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역동적인 핸들링 감각을 선사한다. 연비나 적재공간의 활용도 대신 운전재미를 극대화한 크로스오버라는 점에서 단연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낸다.

하지만 모든 소형 SUV는 기존 승용차의 대안으로 여겨진다는 현실을 놓쳐선 안 된다. 티구안이 골프의 대안이라면 EX37은 G37의, X1은 3시리즈의 대안이다. 대안은 결국 최선의 해답이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국내에 선보인 랜드로버 레인지로버는 주목해볼 만한 소형 SUV다.

이 차는 진짜배기 쿠페처럼 2도어 모델을 마련하는가 하면 있는 힘껏 사치를 부린 인테리어로 ‘프레스티지 컴팩트 크로스오버’를 지향했다. 하지만 뛰어난 온로드 성능뿐 아니라 라이벌을 압도하는 오프로드 성능까지 갖춰 전형적인 SUV의 기준을 새롭게 세웠다는 평까지 듣고 있다. 이 차는 <모터 트렌드>가 선정한‘올해의 SUV’에 올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본질에 충실한것만큼 아름답고 가치 있는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