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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쇼룸

[Auto Column in 금호타이어] 국산 수제 스포츠카의 미래 - 극소수 대부호들의 성향을 노려라!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일곱 명의 가수들을 통해 우리는 잊고 있던 어떤 정신을 새롭게 배운다.
무대의 주인공들이 온 몸의 근육을 긴장하고 이완시켜 뽑아내는 목소리에선 치열한 노력으로 점철된 그들의 수십 년 세월이 뚝뚝 묻어난다. 그것은‘장인정신’이 빚어낸 아름다운 결과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장인정신으로 점철된 분야가 있으니 바로 수제 스포츠카 시장이다. 그런데 요즘 수제 스포츠카 시장의 판도가 심상치 않다. 장인정신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모양이다.

글 김형준/월간 <모터트렌드> 에디터

 

 


국산 수제 스포츠카의 미래

극소수 대부호들의 성향을 노려라!
 

 


 ‘장인 匠人’이란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걸 업으로 하는 사람을 일컬어왔음을 떠올려보면, 대량생산과 소비가 일반화된 지금 장인 혹은 장인정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이는 자동차 산업 역시 마찬가지여서 1910
년대 포드 컨베이어벨트로 대변되는 대량생산방식의 출현 이래 가내수공업에 기반을 둔 장인정신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그나마 유럽이나 미국, 일본등 긴 자동차 역사를 지닌 지역엔 아직 명맥을 잇고 있는 장인 집단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기간산업으로 국가경제의 중심에서 성장한 우리 자동차 
산업엔 장인 혹은 장인 집단의 존재가 극히 드물다. 프로토 스피라가 세간의 관심을 끌어 모은 배경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을 터다.

 프로토는 국내 완성차 업체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소규모 자동차 제조사였다.
자동차 제조사라곤 해도 1990년대 중반 창업 당시 인원을 
다 합쳐도 50명이 되지 않을 정도의 작은 조직이었다. 실제 이들이 지향한 건 똑같은 규격과 똑같은 품질의 승용차를 대량으로 찍어내는 양산자동차가 아니라 소량의 특별한 자동차를 손으로 뚝딱뚝딱 두드려 만드는 ‘자동차 공방工房’ 었다.

카로체리아 또는 코치빌더로도 통용되는 자동차 공방은 국내에선 낯설어
도 유럽에선 긴 역사를 지닌 자동차 제조방식의 하나다. 멀리는 귀족용 마차를 주문 제작하는 것에서 출발해 자동차 발명 이후엔 양산 자동차사의 의뢰로 특수한 자동차를 맞춤 생산하며 명맥을 이어갔다.
 영국 로열 패밀리를 위한 자동
차 제작으로 유명한 뮬리너와 파크 워드, 독일 카르만, 이탈리아 피닌파리나와
이탈디자인, 베르토네 등이 카로체리아를 대표하는 이름들이었다.

 프로토 창업주 김한철 씨가 이탈리아 방식의 카로체리아를 지향한 것은 자유로
운 사고 아래‘꿈꾸는 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 거란 믿음 때문이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최초의 미드십 슈퍼카’였고, 그들이 손수 디자인하고 설계한 자동차 ‘스피라’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제품이었다.
 2000년대 초 첫 시험제
작 모델이 완성됐고, 카 레이싱에 참가해 성능도 인정받았지만 스피라는 쉽게 출시되지 못했다. 국내 출시 기준에 맞춰 디자인을 수 차례 수정했고 충돌 테스트도 받아야 했다.
 개발비가 점점 늘어난 건 당연했고, 회사는 자금 압박을 견
디지 못해 모든 권리를 어울림 모터스에 넘겼다.
어울림 모터스 아래서 스피라
가 시판에 들어간 건 지난해 4월의 일이다.

 


 175~500마력의 V6 엔진 네 종류를 차체 중심에 얹고 0→시속 100km 가속
을 6.8~3.5초에 끊는 이 멋진 스포츠카는 안타깝게도 여전히 미래가 썩 밝지못하다.
지난해 8월 1호차를 출고한 후 지금까지 채 30대도 판매되지 않은 미
비한 실적이 한 예다. 최소 9,400여만 원에서 많게는 1억8,000만 원을 호가하는 가격은 차치하더라도 이 차는 1년 생산량이 100대도 되지 않을 만큼 적다.
 소량·수제작이라는 자동차 공방의 전통적인 운영 방식 때문이다.
 희소성
이라는 측면에선 여전히 가치가 크지만 기업에 가해지는 재정적 부담 또한 지나치게 크다. 실상 프로토 자동차가 지향해 온 카로체리아도 최근 큰 어려움을겪고 있다.
 완성차 메이커가 자체 디자인 부서를 강화하면서 디자인 분야의 장
점이 사라졌고, 고객의 특별한 요청을 담은 특수제작차 주문도 눈에 띄게 줄어든 탓이었다. 결국 유럽 각지에 자리 잡은 카로체리아들 대부분은 경영난을 극
복하지 못하고 도산하거나 메이저 자동차회사에 흡수되고 말았다.

 게다가 스피라와 같은 고성능 수제작 스포츠카는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기존
의 쟁쟁한 스포츠카 메이커와 경쟁해야 해 더욱 어려움이 크다. 오랜 역사와 기술력은 물론 모기업의 든든한 지원까지 갖춘 이들에 비해 수공업 기반의 자동차 공방은 역사도 짧고 설계 능력의 한계도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현실이 수제
스포츠카의 멸종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가공할 성능에‘핸드메이드’라는 프리미엄까지 더한 천문학적 금액의 수제 슈퍼카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존재하기때문이다.

 스웨덴 쾨닉세그와 이탈리아에 기반을 둔 파가니가 바로 그런 핸드
메이드 슈퍼카 브랜드다.
1994년 창업한 쾨닉세그는 첫 모델인 쾨닉세그 CC를 1996년 소개한 이래 CC 8S와 CCR, CCXR 등의 신모델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윈드터널에서 정교하게 손질한 카본파이버 보디에 재설계한 포드 V8 엔진을 얹은 쾨닉세그 CC 모델들은 하나같이 시속 400km에 근접하는 최고속과 0→시속 100km가속을 3초대에 끊는 가공할 순발력을 자랑한다.

 나아가 쾨닉세그가 지난해 새
로 출시한 아제라는 5.0ℓ V8 트윈 터보 910마력 엔진을 얹고 최고시속 394km 이상의 성능을 토해내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바 있다.

 람보르기니 
출신의 호라치오 파가니가 1992년 세운 파가니는 1999년 파가니 존다를 첫 시판차로 선보이며 전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전설적인 F1 드라이버 후안 마누엘 판지오가 설계에 참여한 것으로도 유명한 파가니 존다는 초창기 488마력/시속 332km에서 555마력/시속 350km(존다 C12 S 7.3)으로 꾸준히 성능이 향상됐고, 2007년 선보인 존다 R은 750마력 엔진으로 2.7초 내에 0→시속 100km 가속을 끝내는 섬뜩한 성능을 자랑했다.
 
최신 모델인 후에이라는
6.0ℓ V12 700마력 엔진으로 최고시속 376km, 0→시속 100km 가속 시간
3.5초의 성능을 목표로 한다.
 
쾨닉세그와 파가니는 상상을 초월하는 성능뿐 아니라 수십억 원에 이르는‘비싼 몸값’에도 불구하고 없어서 못 팔 정도의 인기를 누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상에 둘도 없이 강력한 성능은 기본이고, 인테리어 소재에서 부품 하나하나까지 손수 가공해 만드는 방식으로 완성도를 높여 세계적인 갑부들의 마음을사로잡은 덕분이다. 아울러 이들 모두 오너가 탄탄한 재력가란 공통점이 있다.

이는 비단 안정된 경영기반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갑부의 성향은 갑부가 알
아보는 법이고, 수제 스포츠카는 극소수 대부호를 겨냥했을 때 비로소 존재가치를 지닌다. 수제 스포츠카는‘장인정신으로 빚어낸 고성능 스포츠카’라는 순수한 문구만 내세워선 살아남기 어렵다. 이는‘토종 핸드메이드 슈퍼카’라는 꿈을 실현시킨 프로토 스피라도 예외일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다.